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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협 씨와의 첫 만남

Thursday, June 5th, 2008

이준협 씨

최근에 겪은 일들 중 가장 설레였던 것은 6년 전 NZEO.COM에서 처음 알게된 이준협 씨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그와는 픽셀아트 강좌 게시판에서 만나 오랫동안 서로 실력을 겨루고 이끌어주며 굉장히 친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4년 후 어쩐 일인지 연락이 끊기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얼마전 그때가 문득 그리워졌습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단서로 이곳저곳을 알아본 끝에 결국 다시 연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준협 씨는 얼마 전까지 뉴질랜드에서 생활하다가 올 해 한국으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원에 입학했다고 합니다. 마침 며칠 전 방학을 맞이해 서울로 올라오셔서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종로와 신촌을 오가며 거의 하루동안 유익한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습니다.

준협 씨의 2005년 작품 『optiques』

준협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예술가를 꿈꿨다고 합니다. 메신저로 고등학교 때 만든 작품 몇 점을 받아볼 수 있었는데 미술의 기초도 배운 적 없다는 사람이 이렇게 창의적이고 멋진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엔 예술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주로 했다고 합니다. 불쌍한 우리나라 입시미술생들이 학원에서 기계처럼 발상과표현, 석고소묘, 칸만화 등을 찍어낼 때 준협 씨는 다른 수준의 고민과 수련을 하고있었던 것입니다. 안타까운 입시미술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해주자 그는 우리나라 입시미술학원에서 그토록 강조–강요하는 기초라는게 자신이 예술을 공부하는 데 있어서는 필요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해주었습니다.

제가 디자이너에서 프로그래머로 꿈을 바꾸었듯 준협 씨도 지금은 과학자를 꿈꾸고 계신다고 합니다. 오늘 만남을 통해 물리학이나 뇌과학, DNA, 양자역학 등에 이르는 해박한 과학 지식과 과학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그는 벌 군체와 동물의 뇌를 예로 들며, 작고 멍청한 연산 하나하나는 별 의미가 없지만 방대하게 모였을 때는 마치 고도의 지능처럼 작용한다는 점에 경이로움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내년에 선택하게 될 전공도 바이오뇌과학 과가 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는 한 때 예술이란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유도해낼 수 있는 무엇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 표현기법은 너무 사소한 것이어서 무엇이 되어도 상관없고, 예술의 범위와 경계는 무한히 확장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지금 과학을 배우고 있어도 사실은 예술을 공부하고있는 것이고 자신의 꿈도 여전히 예술가라고 자부했습니다. 저와 함께 픽셀아트를 할때나 고등학교때 미술을 할때나 지금 과학을 공부할때나 예술하는 마음가짐은 언제나 변함 없었답니다. 오늘 준협 씨와 나눈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였습니다.

아쉽게도 막차 시간이 다가와 조만간 또 뵙기를 기약하며 헤어졌습니다. 오늘 만난 준협 씨는 키도 헌칠하고 그림도 잘그리고 박식하며 유학파에 한국과학기술원 학생인 엄친아 같은 분이었습니다. 이런 소중한 인연을 만날 수 있었단 것에 크게 감사하며 앞으로는 연락 끊기는 일 없이 유익한 이야기를 계속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